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멀어도 너무 먼 목사

  • 느헤미야강
  • 201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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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간에 걸쳐 제 마음을 사로잡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것 발견해서 기쁘고 행복했지만,
그것때문에 부끄럽고 창피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이 그 내용입니다.
 
행하시며! 
증인! 
마음을 갖이하여! 
예루살렘!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그 중에서도 '증인' 이라는 말이 가슴에 얹혔습니다.
너무 먹고 싶어 덜컥 먹었는데
체한것처럼, 아직 소화되지 않은채 가슴에 있습니다.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사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증인이란 사전적으로 '어떤 사실을 증명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사심과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
둘째, 순교자
 
예전엔 별 생각없이 지나갔는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 내가 만난 예수님, 나를 살게 했고, 절망을 소망을 바꾸어주셨으니!'
'그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사는것 당연한거지!'
'그래서 목사 되었으니까!'
근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복음 전하는 것,
예수사랑 나누는 것,
그 사랑, 그 은혜, 그 기쁨, 그 소망을 전하되
보내신 자리에서 순교자적인 삶을 사는게
증인이라는 말씀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삶을 목격한자는 순교자이어야 '는 말입니다.
            '복음을 경험한 자는 순교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는 뜻입니다.
그러고보니 아직 증인이 아니었던셈입니다.
 
그래서였는가 봅니다.
제자들이 하나같이 복음대문에 죽을 수 있었던 것이 그것때문이었구나.
그게 증인의 삶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부끄럽고 챙피해서 눈물만 났습니다.
문제는 전 그 죽음의 자리, 순교의 자리에까지 가기엔
아직도 아무런 준비가 안된 덜 준비된 목사임을 알기때문입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아파하다가
그러다가 덜컥 붙잡은 말씀이 '예루살렘'입니다.
예수님은 그 증인된 삶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예루살렘은 어디일까?
 
내 삶의 자리
하루종일 부딪끼며 살아가는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먼저 희생하고 양보하고 이해하며, 품는것 하나 하나
누구라도 사랑하며 삶을 살아내는 것.
하고 싶지 않아도 그게 예수님을 복음으로 만난 목격자라면
그렇게 사는 것이 예루살렘에서의 증인된 삶.
목격자로서 순교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정말로 마음담아 살겠습니다.
 
 
'다 같이 한 곳에'
이 말씀이 그렇게 귀한 말씀인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강림하신때가 오순절때인데
성경은 그때가 성도들이 '다같이 한 곳에' 있었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성령강림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같이'(헬라어, 호모뒤마돈).
'한 마음을 품고' 라는 의미입니다.
그냥 같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한 곳에 모였는데 그들 모두 어떤 것에 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에서
그들은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명절인 오순절을 맞이해 각처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거리마다 넘쳐나고 있었지만
그들가운데 성령이 임한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님을 온전히 대망하며
기도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그들이었기에.
누구랄것도 없이,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같은 마음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가운데 예외없이 다 성령이 임했습니다.
120명이 하나도 제외됨 없이, 하나같이 다 말입니다.
 
그것이 왜 그리도 부럽던지요.
그것이 초대교회의 역사를 이루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의 삶의 자리가 힘든 이유가 있었습니다. 
함께 모였다고 다 같은 마음을 품은게 아니었습니다.
함께 있다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함께 하면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품는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데
삶의 내용이. 
앙의 깊이와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도 사람을 대함도 다 다른데
우리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요?
누구도 예외없이 같은 성령강림절 은혜를 경험하고 성령충만했듯이
우리도 가능할까요?
우리는 불가능할까요? 
 
정말, 우리안에서도
같은 마음을 품고
오로기 기도하기를 힘쓰는 일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할까요?
 
 
2015.7.11 강성욱목사